20171211(월) 오늘의 클럽에반스 공연 : Super Jam Day
이철훈1집 Day Dream
음반리뷰    2010.04.21 (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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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베이시스트의 고집스런, 믿음직한 출사표

한국 재즈의 저변은 결코 잘 알려진 소수 음악인들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 여러 관계자들이 스타의 출현을 고대하면서도 그것이 음악적 성취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편성으로 눈을 돌리면 베이스라는 악기가 바로 이런 시각과 궤를 같이 한다. 뛰어난 베이시스트가 많은 재즈계는 탄탄한 저변을 형성하고 좋은 작품을 양산할 수 있다. 이철훈에 대한 지지와 기대는 이렇듯 원론적인 시선 속에 자리한다.

앨범에 실린 일곱 곡이 모두 끝났을 때 얻은 첫인상은 바로 이철훈의 ‘고집’이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왠지 말수가 많지 않을 듯한 그의 연주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전체적인 앙상블의 묵직한 중심을 이룬다. 이는 베이시스트로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이며, 한 걸음만 삐끗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되는 자신의 입지와 역할에 대해 본능적으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프레디 허바드 원작의 ‘Up Jumped Spring’을 들어보라. 켄지 오매의 테너 색소폰이 한결 밝은 표정으로 자유롭게 부유하는 반면 이철훈의 베이스는 마치 그 정서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듯 ‘뻔뻔해 보이는’ 표정으로 묵묵히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앨범의 수록곡은 색소폰 쿼텟이 주를 이룬다. 먼저, 우리나라 연주자들과 돈독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버크먼. 그는 여러 장의 뛰어난 앨범을 통해 뉴욕 재즈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지닌 연주자다. 그리고 수년 간 우리나라 재즈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캐나다 출신의 색소포니스트 켄지 오매가 곳곳에서 앨범의 또 다른 포인트로 제 역할을 해주었다. 여기에, 오래 전부터 많은 선배들의 높은 지지 속에 활동해 왔으며 최근 인상적인 데뷔작을 발표한 이상민과 차세대 한국 재즈를 이끌어갈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신동진이 드럼을 맡았다. 일견 조화로운 음악을 뽑아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듯 보이는 구도 속에서 이철훈은 믿음직한 연주로 뛰어난 포스트 밥 사운드를 엮어냈다.

무심코 바라보면 이내 간과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앨범은 좋은 구성미와 이야깃거리를 갖췄다. 화성적으로 특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 주제 때문에 더욱 잘 어울려 보이는 제목의 ‘Day Dream’과 스탠더드 곡인 ‘Softly, As in a Morning Sunrise’, ‘Out of Nowhere’ 등은 참여한 연주자들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한 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경우다. 설정된 지향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솔로를 펼쳐냈고, 나아가 명료한 음악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또 다시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 바로 이철훈의 연주다. 그는, 종종 베이시스트들이 리더로 나선 앨범에서 드러내는, 불필요한 시도를 무리하게 행하지 않았다. 이 말은, 연주자로서 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버크먼 원작의 ‘Mayor of Smoke’는 앨범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의 앨범 [Leaving Home](2002)을 통해 처음 발표됐던 이 곡은 흥미롭고도 시각적인 진행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철훈의 베이스와 켄지 오매의 테너 색소폰이 원곡의 이미지를 더하며 매우 감각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인상적으로 말하면, 이철훈의 베이스가 묵직한 체구의 시장(Mayor)이고 켄지 오매의 테너는 그가 허공으로 뿜어낸 담배연기랄까. 앨범의 마지막에 실린 이 곡의 다른 버전은 색소폰 쿼텟 편성으로 완성한 녹음 위에 두 힙합 음악인이 덧입힌 랩과 연주를 편집해 마무리한 것이다. 애초부터 풍부한 공간미와 굵직한 그루브를 갖춘 곡이었기에 이러한 시도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철훈과 같은 연주자가 한국 재즈의 저변을 형성한다. 그가 그동안 다져온 것은 가장 소중한, 우리 재즈의 뼈대를 이루는 일이었다. 정중동의 행보를 유지해온 이철훈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는 출사표에는 연습 도중 채취해 두었던 짤막한 베이스 독주, ‘Ornithology’가 담겨 있다. 어쩌면 이 곡에 깔려 있는 정서가 그의 모든 것을 얘기해주는지도 모른다. 결국 재즈는, 이런 앨범의 의미와 가치를 간파하는 이에게 곁을 줄 것이다.

김 현 준 (재즈비평가)